e데일리뉴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stupid!)” 이 말은 1992년 미국 대선 당시, 미국의 경제가 침체에 빠진 상황을 두고 민주당 빌 클린턴 대선후보 진영에서 사용한 선거 구호(catch phrase)이다. 이러한 구호로 클린턴은 당시 재선을 노리던 조지 H.W. 부시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 사실 이러한 구호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살펴보더라도 경제가 국가 발전의 근본적인 토대이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도, 다른 나라와의 외교도 결국 경제문제이며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안보도 그 어떤 이념보다도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안정(토대)이 우선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경제문제로 귀결된다.
한국의 2023년 경제성장률은 OECD 평균보다 한참 저조하고
경제 상황은 세계 경제와 비동조화가 큰 문제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올해의 추위는 어느 때보다도 가을의 냄새를 느끼기 전에 빠르게 다가왔다. 그런데 날씨만 추운 것이 아니고 경제는 점점 더 추워지고 있다. 미국, 브라질, 일본 등 주요 국가 및 세계 경제가 호전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지난 11월 말 한국은행이 보도한 2023년 한국의 경제(GDP)성장률은 1.4%로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주요 국가(G20) 평균 성장률(2.9%)은 차치하더라도 저성장 국가로 대표되는 일본의 경제성장률(1.7%)에 비해서도 낮은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제외하고 25년 만에 처음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OECD가 전망한 내년도와 2025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3%와 2.1%로 다소 회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G20의 평균 전망치 2.8%와 3.0%를 고려하였을 때, 지금의 한국경제 상황은 세계 경제와 비동조화되고 있다는 점이 커다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반도체 등 글로벌 제조업 경기가 빠르게 반등하는 경우 수출과 투자의 회복 흐름이 강화되면서 국내 경제가 회복할 수도 있지만, 지정학적 갈등이 다시 심화되면서 원자재가격이 상승하고 2차 파급효과가 확대되는 경우 경제성장률이 1% 후반대(1.9%)로 낮아질 수 있는 등 불확실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물가상승률은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2% 후반대(2.8%)로서 당분간 저성장에 고물가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 논쟁보다는 고물가에 저성장의 경제 상황을 극복할
묘안을 마련하고 총력을 기울여야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여야가 협치하여 국제정세와 연동되는 경제적 불확실성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경제·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정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편승해 언론은 고물가에 저성장이라는 경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초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대처방안을 논하는 기사보다는 독자의 호기심만을 자극하는 특정 정치인의 신당 창당설, 현직 장관의 정치적 색채가 나는 행보성 기사나 팩트(fact)도 제대로 확인(check)하지 않는 마치 과거 군사 정권 시절의 보도지침 같은 장밋빛 부산 엑스포 유치 가능성 등의 기사들로 도배되었거나 현재도 진행형인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내실을 튼튼히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을 기업의 경영자들에게만 의지에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경제·금융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경제정책·예산총괄), 금융위원회(금융정책), 금융감독원(금융기관의 감사·감독)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야는 정치 논쟁보다는 정책 당국자들과 함께 고물가에 저성장의 경제 상황을 극복할 제대로 된 묘안을 마련하고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역대 최고의 세수 결손 등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책 결정을
하지 못하는 관료 사회의 잘못된 문화에 기인
그런데 세계 10대 선진국인 한국의 기획재정부가 올해 초 예측한 2023년도 세수 추계는 연말까지 세수 결손이 약 59조 원 예상된다. 오차율이 역대 최고인 14.8% 이다. 정부는 이 결손 사태의 주된 이유로 경기침체를 지목하고 있다. 올해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 부진과 자산시장(부동산)의 경기 하락이 주요 세수인 법인세와 양도소득세 감소를 초래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수는 올해 초에 예측 가능한 변수였다.
다시 말하면 정부는 올해 초 세계 경제전망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작은 정부’를 표방하며 법인세를 인하하거나 유예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런데 경제·금융 관련 예측 시스템은 낙관적인 상황보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감안해서 예측해야 위기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슬기롭게 대처할 수가 있다.1)
2021년도엔 61조 원이나 더 걷혔지만, 올해는 반대로 59조 원이 덜 걷힐 것으로 전망되는 등, 최근 3년 사이에 역대 최대 초과 세수와 세수 펑크를 낸 기획재정부 예산 담당자들은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세수 예측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필자의 생각은 두 가지 다 아니라고 생각된다.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상당수가 행정고시 중에서도 꽃이라는 재경직 출신이다.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재정을 운용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측 시스템도 전문가(경제학 교수 또는 관련 컨설팅 업체)들과 함께 실증 검증 등을 토대로 구축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터무니없는 예측 결과를 초래한 것일까?
정부는 세수 전망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추계 방법과 결과에 대한 보완을 강화하기로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측 시스템을 운용하는 정책담당자들이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소신 있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관료문화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본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경제전망 등 예측 시스템의 주요 변수 값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추정치에 근거하지 않고 윗선에서 표방(부자감세 등)하는 정책의 입맛에 맞게 낙관적으로 입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러한 커다란 세수 오차는 재정수지 악화에 따른 공공서비스의 질 하락, 정부부채의 증가 등과 함께 경제성장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도 최근의 정부 정책을 보면 다주택자 중과세 세율 완화, 공정시장가액비율과 공시가격 현실화율 축소라는 종부세 세수의 감소로도 이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윗선의 입맛에 맞는 부자 감세(법인세·양도세·종합부동산세의 감소)의 정책 기조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잘못된 관료 사회 문화는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필자는 연구개발(R&D) 카르텔 세력이 학계에 일부 있다는 것에 대해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윗선의 발언 이후에 R&D예산을 대규모 삭감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식의 예산정책이라고 본다. 잘못된 카르텔을 축출해 내는 ‘핀셋 정책’을 펼쳐야 하지,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밀접한 과학기술의 미래를 담당할 R&D 연구진 전체를 규제하는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소신 있게 정책 당국자가 주장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관료 사회 문화의 결과이다. 지면 관계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이러한 눈치 보기식 경제금융정책은 국민연금 개혁(안), 공매도(short sale) 제도개선(안)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경제정책 당국자에게 필요한 능력은
무시, 관계, 변화의 힘을 파악하고 올바른 소신을 갖고 일하는 것
“구구단을 외우면 바보가 된다. 그릴 줄 알아야 한다” 이 글은 최근에 초등학교 엄마들을 중심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수학이 막히면 깨봉수학”의 저자인 조봉환 박사가 한 말이다. AI 개발자였던 조봉환 박사는 공식 암기와 많은 문제 풀이를 통한 요령습득에 치우친 현재 수학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은 창의적인 수학교육을 이끌어 내기 위해 꽉 막혀 있던 수학 개념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하면, 공식 대입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도 쉽게 풀리고, 무한한 응용도 가능해진다”라고 한다.
조봉환 박사는 인간이 AI에게 부여(프로그래밍)한 가장 큰 힘은 무시, 관계, 변화라는 능력을 부여하고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machine learning)하게 하는 것으로서 여기서 ‘무시’는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사사로운 것을 보지 말고 핵심을 빠르게 파악하는 힘이고, ‘관계’는 사실이나 현상을 연결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힘이며 ‘변화’는 관계를 파악하고 패턴화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힘이라고 한다.2)
인간도 AI 시대에서는 무시, 변화, 관계를 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 AI 블랙박스(black box)에 그러한 힘(algorism)을 부여(coding)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수한 성능의 컴퓨터(hard ware)에 뛰어난 프로그램(soft ware)이 탑재되어 있더라도 그것을 활용하는 인간(human ware)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인 것과 유사한 논리이다.
따라서 경제·금융정책 당국자도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무시) 불확실성이 커지고 급변하는 대내외 경제·금융 환경 속에서 국가 경제발전에 필요한 핵심적인 변화 요인을 빠르게 파악하면서 미래에 대비하는 경제·금융정책을 소신 있게 윗선에 설득하고 그러한 과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와 여당은 민초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내년도 총선에서 여당이 선전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가 될 것
영국의 역사학자인 카(E. H. Carr)는 그의 저서「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끊임없이 경제가 국가 발전의 근본적인 토대라는 대화를 이어 나가는 화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계의 역사를 비추어 보았을 때, 지도자의 개인적인 사소한 오점이나 결점은 혹시 눈감아줄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를 망쳐놓은 지도자는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그만큼 민초(국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늘 경제이기 때문이다.
정부(용산)와 여당은 야당과의 정쟁보다는 거대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치하여 각종 경제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민초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들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한 전략이 다른 어떠한 전략보다도 내년도 총선에서 여당이 선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
1) 국제신용평가기관인 Moody’s, S&P 등은 기업의 신용등급을 부여할 때 최악의 경기 시나리오를 가정해서 그러한 상황(stress)에서도 부실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감안하여 평가한다.
2) 인공지능에서 편미분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편미분이 다른 조건은 고정(무시)하고 관심 변수의 변화량(관계)을 찾는 수학적 기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