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데일리뉴스 |[생명의 시]
백 년만의 인사
요코하마 아사노 독크에서 나는 머리 숙여 인사를 건넨다
조선인의 발음으로 드리는 쥬우고엔 고쥬센(15엔 50전)*
안녕하십니까? 또 안녕하십니까?
어떻게 안녕할 수 있겠습니까?
이리새끼 같은 몰염치로 몰아치던 백 년 전의 광기는 발톱을 감추고
염장의 시신들을 쓸고 가던 바닷물
칠월 백중의 달무리 속에서 백설기 하얀 김이 피어 오른다
오오 반달 같은 고향은 멀기만 해
어머니의 가슴 같은 노랫소리는 사라지고
죽엄의 노래만 아직 이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쥬유고엔 고쥬센(15엔 50전)
백 년이 지난 거리에서 그들은 줄을 맞추어 대지진 대피 훈련을 한다
가슴 떨리는 싸이렌에 맞추어 질서를 지키며 표정 없는 얼굴들이 지나간다
무엇을 위한 질서인가
기댈 곳 없던 목숨, 목숨들
현해탄 너머 다시 돌아가야 할 원혼들은 유령이 되어 동경 거리를 헤매인다
염천의 동경 거리에 널린 유령들의 발자국을 보아라
터진 내장을 부여안고 기어이 조선으로 기어가는 피의 흔적들을 보아라
일본인들은 보아라
눈을 감은 위정자들도 꼭 보아라
쥬유고엔 고쥬센(15엔 50전) 한 마디에 목숨을 건 조선인들의 원한
그래도 간다
고향을 찾아 간다
찢겨진 사지를 흔들며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아 잠들고 싶다
밥 짓는 연기가 흐르던 강가를 지나 집에 들어가
아버지의 방에서 잠들고 싶다
원수의 이방을 떠나
어머니의 장독대에 기대어 잠들고 싶다
*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진도 7.9의 강진이 일본의 중심지 도쿄와 관동 일대를 강타하였다. 무고한 조선인들이 일본의 군경과 민간인에게 학살당하는 만행이 벌어졌다. 이 때 그들은 조선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15엔 5전을 말해보게 하고 학살자를 선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