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데일리뉴스 |[평택=강경숙기자] 잠자고 있거나 숨겨진, 가치 있는 역사문화를 밖으로 온전히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더욱 그것이 500여 년 전의 아주 먼 옛날의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사라졌거나 쇠퇴한 이념이나 사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다.
숨 쉬는 500년 객사, 망궐례 의례를 재현하는 ‘임금님 만나러 가는 길’이 23일 팽성읍에서 성황리에 진행되어 주민주도적참여형 지역축제로서 빛을 발했다.
2015년도에 기획되어 돼지열병, 코로나 등으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올해 5번째 개최되는 ‘임금님 만나러 가는 길’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7호로 등록된 팽성읍 객사를 주제로 한 평택지역의 대표적인 역사 문화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기획, 준비, 참여를 전적으로 팽성읍 주민들이 주도하고 참여해 진행했다는 점과 K-6험프리스 외국인들이 함께해 한미축제격 문화행사로의 역할도 가미했다는 점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주민들이 주도하긴 했지만 사실 숨은 공로자는 우리문화달구지 경상현 단장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사도 훌륭했지만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내면에서 진두지휘한 경 단장의 노력도 빛난다.
500년 숨 쉬는 역사 지역 자존심 세우는 일
경상현 단장은 2014년 ‘우리문화달구지’라는 비영리 문화기획단체를 만들고 팽성읍 객사를 역사문화기획적으로 접근했다. 팽성읍은 길지 않은 거리에 옛 팽성현의 관아터였던 지금의 팽성읍사무소와 객사, 향교, 주산인 부용산 등이 있었고 객사를 들여다보니 여러 가지 역사적 의미가 충분했다.
옛날 객사에서 진행한 망궐례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지방의 수령이 궐패(闕牌:조선시대때 임금을 상징한 「궐(闕)」자를 새긴 위패 모양의 나무패)에 행한 의식이다. 팽성읍의 옛 지명인 팽성현의 현감이 객사에서 한양에 계신 임금님께 예를 올리던 일이다. 궁궐이 멀리 있어서 직접 왕을 배알하지 못하는 각 지방의 수령들이 임금을 공경하고 충성심을 표시한 의례였다. 또한 객사에서 외국 사신을 맞이하고 교지를 받는 등 객사는 품격이 높고 중요한 관청이었다.
첫 기획 당시 주민들은 그저 불편한 존재로만 여겼던 팽성읍사무소 옆에 위치한 객사는 잘 보이지도 드러나지도 않았고 주민이나 시민들은 뭐 하는 곳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역사유물이었다.
2013년 도시재생사업 차원 지역문화구축사업단장으로 있을 때부터 여러 차례 팽성읍을 왕래하던 경 단장은 “객사를 보고 천덕꾸러기처럼 앉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도 관심이 없어 보였고 대우도 못 받는 것 같았다. 알아보니 500년의 숨 쉬는 역사가 있었고 지역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로서 필요하고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시에 의견을 냈다”
120여년 만에 재현된 객사에서의 망궐례 의례
누군가에 의해 모든 길이 열리듯 경 단장에 의해 팽성읍 객사의 자존심이 세워지고 있었다. 자랑스런 문화를 살리면 자식들,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자랄 수 있다는 의지가 작용했다.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망궐례는 1896년에 대한제국 창건 후 폐지되었다. 2015년 문화재청 생생문화재 사업으로 선정, 다시 시작되었으니 120여년 만에 망궐례 의례가 객사에서 재현되어 온 것이다.
덕분에 잠자고 있던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는 새롭게 발견되고 콘텐츠화 돼 역사 교육의 장으로도 성장시키고 있다. 또한 외국인들에게는 우리나라 전통문화 역사를 알리고 체험하게 했고 해마다 열리는 행사는 주민과 외국인들이 함께 즐기는 장도 되어 왔다.
지성여신(至誠如神) 자세로 주민 마음 활짝 열어
처음 기획부터 행사의 실질적 배우까지 팽성읍 주민들과 참여를 신청하는 시민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놀라웠다. 물론 요즘 행사 및 축제가 주민참여형으로 많이들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적으로 온전히 모든 주민이 화합해 내는 지역은 그리 많지 않다. 쉽지 않은 일인데 주민들을 어떻게 결집시켰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그것이 행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니만큼.
“우리동네, 우리주민, 아이와 할아버지가 함께 만드는 축제가 진정한 축제로 오래오래 생명력이 있다. 진정성이 있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한 사람 한 사람, 한 단체 한 단체 사람들을 만나 정성을 들여 설명회를 했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타지의 외부인이 팽성으로 들어와 설명회를 한다고 왔다 갔다 하니 초기에는 사기꾼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해야 할 명분과 방법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임금님 만나러 가는 길’을 주민 속으로 스며들게 하기 위해 2015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찾아다니는 설명회’를 한 것이 100여 차례가 넘는단다. 여러 사람이든, 단체든, 주민들이 있는 곳이면 직접 뛰어가 비중 있게 설명했다. 정말로 믿기지 않는 횟수다.
<중용> 24장 구절에 지성여신(至誠如神)이라 했다. ‘정성(誠)이 극치에 이르면 신(神)과 같아, 모든 뜻한 바를 다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경 단장의 진정성이 주민들의 마음에 극치로 닿았고,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움직인 것으로 다가왔다.
더욱, 해를 더할수록 주민들의 마음이 단순 도움이 아니라 주민 호응도가 조직화 될 수 있는 계기가 보이고 있단다. 특히 내년에는 인원, 협찬, 안전, 물품지원 등 전반적으로 협조가 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 경 단장의 예측이다.
그래서일까 짧은 길을 기자와 같이 지나가는 동안 여러 사람이 경 단장을 아주 반갑고 따듯하게 맞는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안부를 비롯해 궁금한 여러 사항들도 곁들여서.
대한민국축제콘텐츠 대상에서 기획 능력 인정받아
'임금님 만나러 가는 길'은 문화재청과 평택시가 함께하는 생생문화재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업으로 평택시 지역문화재인 팽성읍 객사를 중심으로 한 문화재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행사다. 생생문화재는 남녀노소 누구나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각 지역의 문화유산을 발굴,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와 의미들을 담아내는 문화프로그램이다.
'임금님 만나러 가는 길'은 올해 2월 (사)한국콘텐츠협회에서 선정하는 ‘2023년 제11회 대한민국축제콘텐츠 대상’에서 축제예술분야 전통부문 축제 연출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축제콘텐츠 대상은 지역콘텐츠 산업에 이바지한 지역축제 관계자들을 시상해 대한민국 축제의 경쟁력 확보, 지속적 개선 동기부여, 지역 이미지 제고, 브랜드 가치 증대를 위해 2013년부터 부문별로 개최하는 시상식이다.
2015년부터 문화재정의 생생문화재 사업에 선정된 ‘임금님 만나러 가는 길’은 2022년 12월에는 ‘문화재청 지역 문화재 활용 우수사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잠자고 있는 지역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가 재현돼 콘텐츠된 문화유산이 역사교육의 장이자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오감 만족 프로그램으로 우뚝 선 셈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바로 세울 수 없어
경상현 단장은 요즘 주민 중에서 행사를 기획, 추진, 운영할 수 있는 총괄 기획자를 양성하고 있다. 시민문화기획자 양성교육에도 참여하게 하고 서울문화기획자 모임 등의 경험도 할 수 있게 한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획자가 주민 속에서 양성되어져야 하는 이유이고 주민추진단을 꾸리기 위한 전초전이다.
‘임금님 만나러 가는 길’의 규모가 커진다면 팽성읍 단위에서 2박3일정도로 외국인과 주민, 관광객을 유치하는 프로그램을 마련, 지역경제 활성화도 도모해 보자는 그림도 있다. 팽성 주민과 K-6 미군속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전통문화적 프로그램을 개발, 팽성문화탐방 코스를 기획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문화는 자존감이고 자부심이다. 현재 구축하지 않고 발굴하지 않으면 영원히 바로 세울 수 없다. 지금 당장 불편하지 않을 것 같지만 나중엔 필요해도 다시 보존하기 힘들다. 지금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우후죽준 지역별로 문화행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팽성읍 객사를 중심으로 평택의 문화적 신도시 설계도가 구축되어야 한다고”고 경상현 단장은 제언한다./kkse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