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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사이트

K-55 정문 앞 양복 재단사 50년 인생

양복·양장·웨딩드레스까지 못 만드는 옷 없어
10대 후반 창업 2곳 성공 선천적 장사 수단
바르고 믿음직, 30년 넘는 외국인 인연도
2020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 선정 유일
90세까지 건강하게 일하고픈 소망

 

e데일리뉴스 |[평택=강경숙기자] 양복 맞춤 기술 하나로 50년 전 1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외길을 한결 같이 지켜온 이인재 AQ 양복점 대표는 바르고 믿음직한 양복쟁이다. 지금은 오산에어베이스라고 하지만 K-55부대로 잘 알려진 미군기지 정문 앞에서 미군을 포함, 외국인들에게 맞춤 양복점을 운영한다. 양복, 양장, 가죽옷, 웨딩드레스까지 못 만드는 옷이 없다.

 

맨 밑바닥부터 일 배우는 몇 년을 제외하고도 올해 2월 독자적으로 독립해 가게를 운영한 지 딱~ 50년을 맞는다.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즐겁고 행복하다는 신념과 인정받는 작품을 만든다는 성취감으로 이어져온 세월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 대표는 진학하지 않고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친척의 권유로 양복 기술을 배운다. 당시 학교를 가지 않으면 ‘기술’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던 시대다. 기술을 잘 익히면 고소득도 가능하고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이 없던 그런 시절이다.

 

처음 심부름 허드렛일부터 연탄불로 다림질을 하고, 골무 낀 손으로 엮어내는 손바느질, 칫수를 재고 옷을 재단하는 방법 등을 익혀 10대 후반 두 곳에 자신의 양복점을 연다.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나이에 창업을, 그것도 2곳에 할 수 있었는지 믿기지 않는다. 애초에 생각하는 것도 실천하는 것도 남다르다는 것이 작용하는 시점이다.

 

“왠지 될 것 같다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몇 년 동안 일을 배우면서 월급이 그래도 괜찮았던 선배들이 술에 빠져 살거나 도박을 하는 등의 잘못된 생활방식들을 봤다.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고 환경을 떠나 독립하기로 했다”

 

어린 나이에도 선배들의 잘못된 삶이 눈에 들어왔고 휩쓸리지 않으려고 소신대로 자기 삶을 계획해 나가는 모습에서 정말 바른 품성을 가진 심지 굳은 대표란 생각이 든다.

 

그 나이에 운영한 두 곳의 양복점. 한 군데는 오산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다른 한 곳은 송탄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점포를 운영해 오다 1979년부터는 AQ 양복점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우편, 메일, 항공편 재 구매 이어져

 

AQ 양복점은 송탄관광특구 내에 자리한다. 1997년 5월에 지정된 관광특구는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거리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관광객이 전체 관광객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미군기지 정문 앞에서부터 300m 보행자 전용 도로에서 쇼핑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그 옛날 부대 정문 앞에는 50여개의 양복점이 즐비했고 양화점, 이불가게 등이 자리를 잡았지만 이제는 10여개의 양복점이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외국인들이 찾는 물품뿐만이 아니라 클럽과 수많은 여러 나라의 음식점 등등이 포진하고 있어 ‘리틀 이태원’이라고도 불린다.

 

또 이태원에서 찾는 물건이 없을 때 송탄관광특구 내로 오면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물건들을 찾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물품이 비치되어 있어 ‘리틀 이태원’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영어를 몰랐던 처음엔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을 두고 일을 한다. 그런데 자꾸 사람들이 말썽을 부리는 애로가 있어 직접 배우기로 한다. 교재를 사다가 독학으로 영어와 미국 문화를 연다. 초등학교만 졸업했던 이 대표는 항시 학업에 갈증을 느껴 온다. 1990년대에는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마치고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4년제 대학 정보통신공학교까지 마쳐 학사 인정을 받았다.

 

“한 번 마음 먹으면 끝까지, 될 때까지 한다. 신념이 굳고 인내심도 강하다. 항상 한결같고 꾸준함이 믿음직스럽다. 남자들이 속 썩이는 일 하나를 하지 않고 가정과 가족에게 충실한 가장이다” 천생배필인 아내의 말 속에서는 강한 믿음이 비쳐진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고, 진정한 인정이라고 했던가. 아내가, 가족이 존경하는 이 대표. 품성을 인정해주는 KS마크가 있다면 바로 수여될 정도다.

 

한 번 이 대표와 인연을 맺은 미군들은 퇴직해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도 AQ 양복점을 잊지 않고 애용한다. 탁자에 깔려있는 많은 명함, 점포 내에 걸려있는 외국인과 찍은 수많은 사진들은 그동안 AQ와 인연이 닿은 외국인이다.

 

“우편이든, 메일이든, 항공편이든지 간에 한 번 왔다간 외국인들은 다시 찾는다.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3000$에 맞춰 입어야 할 옷을 여기서는 300$이면 10벌도 가능하고 또 마음에 꼭 맞을 때까지 맞춰주니까. 양복 10벌, 셔츠 비롯 30~50벌씩 한꺼번에 주문하는 경향도 종종 있다” 이 대표에 대한 믿음성이 커진 탓에 20년, 30년 인연을 맺고 있는 고객들의 주문인 것이다. 외국인들로부터 ‘옷 잘 만드는 장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증거다.

 

이 대표는 옷을 제작하기 전 고객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묻는다. 옷을 만든 후에도 고객이 마음에 들지 않아하면 손해를 보는 한 이 있어도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만들어주는 것이 철칙이다. 또 너무 바쁠 때는 15명의 직원을 두기도 했고, 일주일동안 밤샘작업을 할 정도로 맞춤 시간을 지킨다. 믿음직한 신뢰에 어릴 때부터 보여준 타고난 장사 수완까지 고루 갖췄다.

 

 

백년가게 선정 소상공인 롤모델

 

AQ 양복점은 지난 2020년에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지정하는 업력 30년 이상의 백년가게에 선정된 바 있다. 1979년부터만 따져도 41년이 된 해다. 소상공인의 롤모델이 되었다.

 

당시 40년이 넘게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아 공식 인증한 점포가 된 것이다. 백년가게는 업력이 30년 이상 된 소상공인 및 소·중 기업을 발굴해 100년 이상 조속·성장할 수 있도록 육성하고 성공모델을 확산하기 위한 사업이다. 업계에선 유일하게 AQ 양복점이 선정됐다.

 

같은 한국인에게도 장사는 쉽지 않은데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에게 장사한다는 것은 더욱. 그래도 이 대표는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단다. 마음으로 다가가는 정으로 상대방을 마음을 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대표는 평상시에 외국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등산’이라는 매개체를 종종 활용한다.

 

물론 장사를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서로의 나라와 문화를 알아가기 위함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봉사적으로 발동했다. 부부동반 송평산악회와 51CPTS GNP 총무를 하면서 외국인들과 함께 등산을 자주 간다. 곳곳의 명소를 찾아다니며 등산을 한다. 한국 문화나 음식, 명소를 소개하고 함께 즐긴다. 가까워지고 친해진다. 한편으로는 한국문화 전도사 같아 보인다.

 

 

자기관리 철저, 타인 존중 마음 깊어

 

올해 70세인 이인재 대표의 꿈은 향후 90세까지 건강하게 계속 일을 하는 것이다. 건강관리를 워낙 꾸준히 잘 해 온 탓에 감사하게도 건강하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등산하거나 수영으로 몸을 단련한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은 피하고 평소에 화를 내는 법이 없다. 신중히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건강을 지켜와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도 보인다.

 

1남 3녀의 자녀와 9명의 손주를 두고 있는 아버지이자 할아버지다.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능력자이다 보니 자식·손주에게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있다. 각자의 일들을 하느라 가업을 이어받아 할 자녀는 없어도 직원이나 다른 기술자 등 인연이 닿는 사람이 있다면 후계자로 양성하고 싶다는 소망은 있다.

 

50년 동안 직원들을 대하는 것도 남달랐던 이 대표다. “내가 종을 부리라면 내가 그 종의 종이 되어야지 내가 군림하려면 안 된다” 이 한 마디로 그동안 사람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겸손하면서도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이 대표의 신조와 실천이 그대로 드러난다.

 

앞으로도 소망대로 가족을 지켜가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속에서 건강하게 쭉~ 외국인들을 위한 맞춤 양복의 장인이자 한국문화의 전도사이길 바란다./kkse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