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데일리뉴스 | [평택=강경숙 기자] 노인이 되면 누군가는 나이를 말하지만 이익재 지회장은 여전히 현장을 말한다. 올해 82세의 나이에도 이 지회장의 하루는 여느 젊은 현역 못지않게 분주하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빠지지 않고 출근하는 그의 365일 4년의 출근 생활, 이 지회장의 이런 현장 출동은 무투표 연임으로 갈 수 있는 신뢰를 만들었다. 그것도 평택시지회 역사상 최초의 무투표 연임이다. 연임 지회장으로 3월 22일부터 또다시 공식일정을 시작하는 그의 집념과 철학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토요일, 일요일, 365일 4년동안 어김없이 사무실로
“토·일도 사무실로 출근했다. 지회로 오시는 어르신들이 거리도 멀고 시간도 많이 걸려 직접 읍‧면‧동으로 출동해 업무를 처리했다. 무투표 연임 하루아침에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4년 전부터 몸으로 실천하고 현장에서 일한 것이 신뢰를 얻은 것 같다”
말은 담백했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어김없이 사무실로 나와 연설문을 쓰고, 각종 서류를 직접 챙기고, 직원보다 먼저 현장을 돌며 문제를 찾았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결국 신뢰가 됐고, 그 신뢰는 대한노인회 평택시지회장 무투표 연임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맡은 일은 반드시 제대로 해낸다”는 집념
82세의 나이에도 그는 단단해 보이고 무척이나 강해 보였으며 자신감이 넘쳤다. 노인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실제로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에는 피로보다 의욕이, 회고보다 계획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그에게 직책은 명함이 아니라 책임이었고, 연임은 영광이 아니라 더 무거운 짐이었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맡은 일은 반드시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집념이다. 그는 스스로를 두고 “하면 잘하고 싶고, 할꺼면 이기고 싶고, 기왕 한다면 1등 하고 싶은 욕망이 꽉 차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래서 조합장을 할 때도, 면장을 할 때도, 읍장을 맡았을 때도 늘 현장으로 먼저 갔다.
특히 읍장 시절 이야기는 그의 성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외부에서 온 자신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출근해 마을 구석구석을 먼저 둘러본 뒤 8시 30분에 읍사무소로 들어갔다. 어디 하수도가 무너졌는지, 어디에 쓰레기가 쌓였는지, 무엇이 주민 불편인지 먼저 확인한 뒤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그는 행정의 답은 책상 위가 아니라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그때도,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읍‧면‧동 직접 찾아가는 현장행정 어르신 불편 덜어
그의 철학은 평택시지회 운영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지회장이 된 뒤 가장 먼저 파고든 것은 노인들이 겪는 ‘이동의 불편’이었다. 읍·면‧동에 계신 지역 어르신들이 일자리 신청, 교육, 각종 행정 처리를 위해 몇 시간을 들여 지회까지 와야 하는 현실을 보며 그는 ‘답’을 현장으로 옮겼다. 직접 읍‧면‧동으로 내려가 일자리 신청을 받고, 교육을 하고, 회의를 진행했다. 어르신들이 먼 길을 오지 않아도 되게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 결과는 숫자로도 나타났다. 300명 수준이던 일자리는 1천 명 이상으로 늘었다. 도우미 일자리, 각종 지원 사업, 경로당 물품 지원까지 가능한 한 많이 연결했다. 냉장고, 에어컨, 안마의자, 시계 등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시와 연결하고, 부족하면 직접 발로 뛰어 확보했다.
그는 “온 사람마다 안 된다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무조건 다 해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거절하기보다 해결책을 찾는 태도가 결국 입소문이 됐고,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돌아온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연임 성공 비결을 화려한 언변이나 정치력에서 찾지 않았다. 오히려 “답은 현장에 있다는 걸 알고 실천한 것이다”라고 했다. 오랜 행정 경험 속에서 체득한 현장주의가 지회 운영의 핵심이 됐고, 그것이 회장들의 신임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삐뚤어지게 살지 말고 곧게 살아야 한다”
그의 인생은 지회장 이전에도 굴곡이 많았다. 농협 조합장으로 출발해 전국 1등 성과를 이어갔고, 면장과 읍장, 시의원, 시의장까지 두루 거쳤다. 행정가이자 정치가의 길을 걸었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마지막 봉사 무대를 노인회에서 찾고 있었다. “이게 내게 맞는 직업이다. 마지막 봉사하는 길이다”라는 말에는 지나온 세월 끝에 도달한 확신이 묻어났다.
그의 인생관 역시 분명했다. 어렵게 자랐고, 전쟁도 겪었다. 그래서 “삐뚤어지게 살아서는 안 된다. 곧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자신의 철학이라고 했다. 일찌감치 술과 담배를 멀리했고, 잘못된 일은 애초에 하지 않으려 했다. 월남전에 자원했던 이유조차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고 했다. “나 하나 죽어서 식구가 살 수 있다면이라는 절박한 마음이 있었다”는 고백은 그의 성장 배경과 책임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가난을 뚫고 삶을 일으켜 세운 뒤 그는 장학과 지역사회 지원에도 힘을 쏟았다. 학비를 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보며 오랜 기간 지원을 이어갔고, 학교 환경 개선에도 나섰다. 개인의 성공을 자신만의 성취로 끝내지 않고 다시 지역사회로 돌려주려 했던 셈이다.
더 많은 노인을 품을 수 있는 생활형 교육 공간이 필요
지금 그의 관심은 다시 미래로 향해 있다. 앞으로 4년 동안 꼭 이루고 싶은 일로 그는 세 가지를 꼽았다. 노인학교 확대, 파크골프장 조성, 그리고 연꽃을 활용한 관광·환경 자원화다.
그가 말하는 노인학교는 단순한 여가 프로그램이 아니다. 폐교나 유휴 공간을 활용해 어르신들이 하루 종일 머물며 배우고, 교류하고,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복지관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고, 더 많은 노인을 품을 수 있는 생활형 교육 공간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파크골프장 구상도 단순한 체육시설 확충 차원이 아니다. 그는 운동을 ‘노인에게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보약’이라고 표현했다. 건강을 잃고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 있는 일이 개인의 고통을 넘어 가정과 국가의 큰 부담이 되는 만큼, 노년기 건강 유지야말로 가장 중요한 복지라는 주장이다. 탁구든 배드민턴이든 파크골프든, 각자 취향에 맞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는 논리다.
연꽃 식재와 관광 자원화 구상에는 그의 지역 발전 구상이 담겨 있다. 물을 정화하고 경관을 살리며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연꽃을 평택의 수변 공간과 연결해 경제와 환경, 관광을 함께 살리자는 아이디어다.
그는 평택이 문화시설과 관광 자원이 부족해 노인들조차 서울로 나가 시간을 보내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르신이 지역 안에서 머물고, 즐기고, 소비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결국 자신이 이루고 싶은 방향이었다.
스스로 어른답게 품격을 잃지 않는 삶 중요
그는 노인들에게도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스스로 노인임을 망각하지 말고, 어른으로서의 품격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라도 공손해야 하고, 어른답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존경받는 어른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품격을 지키려는 노력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젊은 세대를 향해서도 주문은 분명했다. 생각과 의욕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으며, 행정과 예산이 뒤따라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늘 제도의 빈틈을 아쉬워했지만, 동시에 돈이 많이 들지 않으면서도 효과를 낼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더더욱 운동, 교육, 소규모 일자리 같은 현실적 대안을 강조한다.
인터뷰 말미, 그는 다시 한번 품격을 이야기했다. 노인은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이 아니라 어른이어야 하고, 어른은 말과 행동에 품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수십 년 행정과 정치를 거쳐 이제 노인회 현장에서 다시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으로 들렸다.
무투표 연임은 선거 결과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삶이 만들어낸 결론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사무실 불을 켜고, 먼 읍‧면‧동까지 직접 찾아가고, 어르신 한 사람 한 사람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뛰었던 시간들. 그는 그 시간을 ‘피나는 노력’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82세의 지회장은 여전히 다음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에게 연임은 마침표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문장이다./kkse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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