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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생명의 시] 우대식 시인 '백년만의 인사'

  • 등록 2023.10.06 16:15:17

 

e데일리뉴스 |[생명의 시]

 

               백 년만의 인사

 

요코하마 아사노 독크에서 나는 머리 숙여 인사를 건넨다

조선인의 발음으로 드리는 쥬우고엔 고쥬센(15엔 50전)*

안녕하십니까? 또 안녕하십니까?

어떻게 안녕할 수 있겠습니까?

이리새끼 같은 몰염치로 몰아치던 백 년 전의 광기는 발톱을 감추고

염장의 시신들을 쓸고 가던 바닷물

칠월 백중의 달무리 속에서 백설기 하얀 김이 피어 오른다

오오 반달 같은 고향은 멀기만 해

어머니의 가슴 같은 노랫소리는 사라지고

죽엄의 노래만 아직 이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쥬유고엔 고쥬센(15엔 50전)

백 년이 지난 거리에서 그들은 줄을 맞추어 대지진 대피 훈련을 한다

가슴 떨리는 싸이렌에 맞추어 질서를 지키며 표정 없는 얼굴들이 지나간다

무엇을 위한 질서인가

기댈 곳 없던 목숨, 목숨들

현해탄 너머 다시 돌아가야 할 원혼들은 유령이 되어 동경 거리를 헤매인다

염천의 동경 거리에 널린 유령들의 발자국을 보아라

터진 내장을 부여안고 기어이 조선으로 기어가는 피의 흔적들을 보아라

일본인들은 보아라

눈을 감은 위정자들도 꼭 보아라

쥬유고엔 고쥬센(15엔 50전) 한 마디에 목숨을 건 조선인들의 원한

그래도 간다

고향을 찾아 간다

찢겨진 사지를 흔들며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아 잠들고 싶다

밥 짓는 연기가 흐르던 강가를 지나 집에 들어가

아버지의 방에서 잠들고 싶다

원수의 이방을 떠나

어머니의 장독대에 기대어 잠들고 싶다

 

*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진도 7.9의 강진이 일본의 중심지 도쿄와 관동 일대를 강타하였다. 무고한 조선인들이 일본의 군경과 민간인에게 학살당하는 만행이 벌어졌다. 이 때 그들은 조선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15엔 5전을 말해보게 하고 학살자를 선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