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데일리뉴스 |[평택=강경숙기자]어떤 사람이고 어떤 마음이면 가능했을까? 평생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30년 동안의 올곧은 자원봉사. 인터뷰를 들어가기 전 각인된 나를 향한 질문이다.
문해교육부터 초등과정교육과 검정고시 대비를 책임지는 상록평생학교. 지금은 개명되어 ‘민세평생학교’다.
지난 5월 23일 (사)민세아카데미의 ‘처음처럼 미래비전 선포식’을 기점으로 (사)평택시민아카데미는 (사)민세아카데미로, 부설 ‘상록평생학교’는 ‘민세평생학교’로 개명됐다.
대외적으론 30년 동안 알려진 ‘상록평생학교’가 아직은 더 익숙하다.
‘문해교육’이라는 국가적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된 움직임이다. 그 오랜 기간 동안 한결같이 학교를 지켜온 파수꾼(?) 이한칠 교장. 스스로 자신을 파수꾼으로 정의 내린다. 구수하고도 정감 있는 경상도 사투리가 아직도 몸에 배어있는 60대다.
“30년을 되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을 했다기 보다 감동적인 스토리를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문해 교육은 어머님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도전할 수 있는 삶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보람이다. 글이 곧 나의 인생이고 행복이고 젊음이다. 문해 교육을 통해 느낀 가장 큰 소중함이다. 혼자만의 힘이었겠나? 다니던 회사도, 주변 지인들도, 특히 사랑하는 아내의 이해가 컸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당시 지역문화운동단체 ‘모임터’ 합류-학교 금전적 문제 책임
이 교장과 평택의 인연은 1988년 1월 당시 미국기업 퓨리나 사료에 출근하기 위해 이사를 오기 시작함에서부터다.
장고가 배우고 싶어 한 학원을 방문했다가 학원 강사로부터 지역 청년들 단체 ‘모임터’ 합류 제안을 받았다. 장고와 사물놀이에 흠뻑 빠져 있던 시절이다.
함께한 청년들과 미군기지 주둔지역에서의 전통문화 계승을 고민했다. 당시 교육의 어려움도 많았던 시절, 1993년 당시 (사)평택시민아카데미(전 모임터) 황우갑 회장의 제안으로 문해교육사업에 함께 발을 들여놓은 것이 시작이다.
연필 하나에서부터 책, 걸상, 학교에 필요한 모든 물품까지. 후원회도 만들고 자체적으로 한글교재도 만들고. 이한칠 교장의 피땀이 들어가지 않은 게 없다. 없으면 찾아서 갖다 놓고 부족하면 지인들을 흔들어(ㅋㅋ) 채워 넣었다.
대외적으로 학교가 운영될 수 있도록 필요한 것 대부분이 그의 정성과 피땀이 섞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다니던 회사의 도움도 컸고, 이 교장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인들의 주머니도 털렸다. 심지어 학교 공간으로 개인대출까지 서슴지 않을 때는 아내의 따듯한 배려도 큰 힘이었다.
모임 회의 시 자금난에 허덕일 때는 가차 없이(?)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제공하면서 회의를 하곤 했다. 그러니 고맙고도 고마운 아내다.
젖동냥 베푼 어머니 정신적 지주, 회사 볼런티어 정신으로 무장
30년 세월! 어떤 원동력이면 가능했을까? 한글을 몰랐던 어머님의 영향과 볼론티어 정신을 추구하는 외국계 회사의 영향을 꼽는다.
한글을 좀 알아도 잘 모르셨던 어머니. 하지만 그런 어머니는 당시 배곯는 아기들에게 젖을 나줘 주셨다. 베푼 마음이 크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는 아들의 정신적 지주다. 어머니 모습과 교훈에서 문해 교육의 열정도 자원봉사의 그림도 자연스럽게 새겨진 것이 이 교장의 원동력이다.
또, 어떤 일을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돕자는 볼런티어 정신에 입각한 회사의 자원봉사 활동 추구점도 한 몫을 했다. 여러 각도에서의 회사의 지원.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고맙고도 고마운 회사다.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이 교장의 적극성과 품성을 두고 싶다. 어떤 계획이 세워지면 지체하는 법이 없다. 적극적인 추진력이 풀가동된다.
나이 들어 뒤늦게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마음을 생각하면 지체할 시간이 없나보다. 사람들을 향한 올곧고도 따듯한 품성이다. 이렇게 다져진 이 교장만의 원동력이 30년 동안 민세평생학교도 지켜내고 자신도 지켜냈던 것으로 다가온다.

친구같은, 연인같은 소울메이드 교장
이번 인터뷰와 관련, 이한칠 교장의 자료 사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수백 여 장 이상의 그 많은 사진에서. 이유인즉 학교에서 어디를 가든, 무슨 일을 하든 사진사 역할은 이교장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학교를 찾는 어머니들의 추억과 사진자료를 위해 정성을 다했다. 들여다보니 사진사진마다 이 교장이 더 재미있고 좋은 사진을 연출한 노력의 흔적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이 교장은 분위기 메이커다. 흥과 끼가 넘친다. 즉석에서 노래와 춤이 나오고 아나운서 역할을 잘한다. 거기에 사투리까지. 분위기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다. 유머러스한 감각도 1등이다. 그때그때 분위기에 맞는 트로트가 절로 나온다. 그러니 어머님들이 편해지는 시간 시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심스럽게 학교를 찾는 어머님들을 위해서다. 한글을 모른다는 것이 눈뜬장님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일까. 그 마음을 읽기 때문이리라. ‘얼마나 오랜 시간 그 장님의 굴레에 묶여서 자유롭지 못하게 사셨을까?’를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이 교장이다.
그런 어머니들이 조금이라고 편하게 빨리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교장의 큰 역할이다. 그러려면 어머니들 앞에서 재롱도 부려야 하고 앙탈(?)도 부려야 한다. 그래서 친구 같은, 연인 같은 교장이다. 한마디로 어머님들의 소울메이트 교장이다.
학생들 마음 읽어내는 진정성으로 다가가
우여곡절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공부하러 방문하는 어머님들은 대부분 인생 50년 이상을 살아온 학생들이다.
오랜 세월 자기 주관도 가진 사람이다. 공부를 해본 경험도 없다. 자신들이 생각한 대로 잘 안되니까 짜증, 다툼, 무례한 언행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퇴교조치를 할 수 밖에 없을 때가 가장 가슴이 아프다. 또 자신에 대한 한계로 중도에 포기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을 설득하고 마음을 바꾸는 일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나 상처가 컸을까를 생각하면 머무를 수 가 없다.
이 교장은 노래, 춤, 악수, 박수 등으로 분위기를 재미있게 바꾼다, 배움의 중요성도 다시 상기시키고 좋은 사례들도 보인다. 공부할 수 있도록 마음을 돌이키게 한다. 학생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어내야 가능한 일이다.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 그러기 위해선 진정성 있는 말과 행동만이 답이다.
또, 한 글자 한 글자 눈이 뜨일 때마다의 성취감과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거기에 여러 행사들로 학교생활의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게도 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중학교, 고등학교과정 검정고시로 800여명이 합겨됐다. 적지 않은 숫자다. 그 많은 학생들의 마음에는 멋있는, 기억에 남는, 봉사하는 교장선생님으로 이 교장을 기억할 것이다.

카길 봉사상 수상금 평택시민아카데미에 전액 기부
모범상을 받으려고 자원봉사를 했을까. 아니! 타고난 부지런함이다. 거기에 열정이 더해졌다. 살면서 모범적인 행동을 해보자 마음먹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산물이다. 부산물인 타고난 낙천적 성격은 사람들 속에 흡수가 잘 된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좋은 교장이다.
가장 큰 상은 카길 사회공헌을 인정받는 ‘카길 케어스 볼런티어 어워드’. 쉽게 표현하자면 카길 봉사상이다. 카길 케어스가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국내 및 국제 비영리, 비정부기구(NGO)를 선택해 기업 차원의 지원을 제공하는 상. 이 상의 수상자로 2003년도에 이한칠 교장이 선정됐다. 당시 수상금 130만원을 평택시민아키데미에 전액 기부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다.
또, 2016년까지 지역사회를 위해 실천한 헌신적인 자원봉사시간 5000시간 이상. 이를 달성한 경기도 우수 자원봉사서 인증서를 받았다. 이제 1만 시간을 향하고 있다.
그래도 이 교장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상은 ‘지역 교육문화발전 지속 헌신상’이다. 2018년 (사)평택시민아카데미에서 1988년 단체 창립 초석부터 25년간 봉사를 인정한 상. 이제는 이 교장의 노력과 정성이 30년을 이루는 시점이다.

도전 정신으로 모범적 행동을 낳자
이한칠 교장은 오랜기간 문해 교육을 해온 경험치를 통해 후배들에게 하나의 배움을 전하고 싶다. 누구든, 어느 분야에 있든지 아마추어 수준에서 상위권까지 가보라고. 그것이 운동이든 학습이든 자원봉사든지 말이다. 그 사이클까지 가본 사람은 어느 순간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정상까지 가본 사람이 가는 길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나름대로 상위권의 목표가 있고 도전정신을 다지고 몸을 움직여보면 그것이 모범적 행동의 결과물을 낳는다는 교훈이다.
이한칠 교장은 문해교육과 관련 국가를 향해서도 개선점을 제안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인정받은 민간단체에서 해오고 있다면 운영예산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운영에도 태부족한 그런 예산이 아니라. 도전하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건강하게 이어갈 수 있는 사업예산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 강조한다.
이제 민세아카데미도, 민세평생학교도 평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전국을 향해 나가는 시점이다. 그만큼 역할이나 과제도 점점 넓어지고 깊어진다. 이 교장의 고민도 더 커지도 있다.
그래서 학교장 후임의 문제도 고민중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이한칠 교장만큼 해나갈 수 있는 후임을 볼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죽~
민세평생학교가 또 다른 학생들에게도 한글을 통한 건강을 주는 그런 학교로 이어졌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보는 인터뷰 시간이다. “한글이 곧 나의 인생이고 행복이고 젊음이다” 이 교장의 말이 진한 여운으로 귓속을 맴돈다./kkse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