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는 문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듣곤 한다. 카페, 상품, 공원, 의복 등 다양한 곳에서 예술은 빛을 발하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예술의 만무한 확장시대에 그러면 ‘예술’의 역량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예술’은 ‘디퍼밀리어라이져이션(defamiliarization; make strange)’ 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러시아의 구조주의(structuralism)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빅터 쉴라브스키(Victor Shklovsky)에 의해 주장되고 서양 철학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쉴라브스키의 디퍼밀리어라이제이션의 중요한 개념은 ‘다름의 체계(system of differences)’로 이것은 새로운 관찰의 방법이 새로운 〔언어적〕 표현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구조주의자들이 활동하던 19세기와 다르게 예술이 형태가 다양해진 지금의 시대에는 표현 방법이 ‘언어적’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개념을 다양한 예술에 적용하고자 하면, 디퍼밀리어라이제이션은 예술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일상적으로 보여 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상적인 것을 다시 생각하고 곱씹어 보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에서 익숙한 물체들에 이름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익숙한 것들이 이상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가 이야기 중에 묘사한 물체들은 마치 그가 처음 본 것처럼 묘사를 했다. 즉, 채찍질(flogging)행동이나 묘사가 우리가 알고 있는 채찍질에 대한 이해의 변화 없이 그 형태를 바꾼 묘사를 통해 익숙함과 거리가 멀게 만든다. 또 다른 예는 Kholstomer의 나래이터가 하는 말이다, 아니 언어가 아니라 우리가 타고 다니는 ‘말’ 말이다.
이 작품에서는 말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이러한 전개 방식이 이 이야기를 익숙하지 않게 만든다. 디퍼밀리어라이제이션의 목적은 독자들이 의미를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에 대한 특별한 인지를 창조하는 것이다.
자 다시 첫 문단으로 돌아가 보자. 현재 우리는 예술의 세계에 깊이 빠져있다. 우리의 삶 주변에는 디퍼밀리어라이제이션을 통해 천지개벽한 것들이 많다 : 아름다운 카페, 유명한 건축물, 앤디워홀의 작품, 장인 정신이 깃든 수공예품, 백년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작품 편곡 등 분야마다 사람들의 넋이 나가게 하는 많은 작품들이 있다.
이러한 작품들 속에는 다양한 디퍼밀리어라이제이션의 기술을 사용하여 일반적으로 너무 익숙하고 상식적이라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내용들을 전혀 익숙하지 않게 만듦으로써 고객, 관객 및 독자들에게 더욱 빛이 나는 작품으로 탄생하게 만들었다.
카페는 시각예술, 좀 더 정확히는 디자인을 적용하여 커피보다는 장소의 아름다움으로 더 많은 고객들을 불러 모으고, 화려한 외관과 실용적인 실내 장식을 반영한 건축물들은 그 건축물의 용도가 무엇이든 간에 가치와 활용면에 있어서 더 많은 다양한 기회들을 창출해내고 있다.
앤디워홀의 작품은 팝아트(Pop Art)라는 시각 예술의 새로운 경향을 만들며 가치를 높였고, 장인 정신이 깃든 수공예 작품은 장인들의 작품 제작 기술과 시각예술에서 차용한 다양한 색감과 디자인적 요소를 넣어 작품으로써 소장 가치를 높이고 공예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백년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은 magic realism이라는 새로운 표현을 통해 진부한 죽음을 새로운 단계로 승화 시켰으며, 음악 분야의 편곡은 귀에 익숙한 곡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신선한 음악적 감각과 유행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다양한 표현 방법들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고 많은 독자나 관객들을 불러 모으듯이 예술은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좋은 기술이 되었다. 그리고 디퍼밀리어라이제이션은 예술 그 자체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개념을 활용한 산업과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쳐왔다. 그러므로,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디퍼밀리어라이즈드 예술(defamiliarized arts)은 가장 효과적인 문화, 사회, 경제 및 심미적 변화의 수단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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